기도전문월간지 68호

2007년 12월 1일 발행

                                                             월간 기 도

                                    Monthly Prayer Journal

                                    주여, 나로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 구유에 누이신 예수 그리스도 ————- 김정복 — 2- 3
  •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 ——=– 김정복 — 4- 5
  • 구약에 나타난 기도 (59) —————- 김시남 — 6- 7
  • 시편정해 (68) ———————— 최선호– 8- 9
  • 새 번역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해설(6) ——- 이종윤 — 10-11
  • 기도칼럼 (16) ——– 간구기도 ——– 김정복 — 12
  • 목양칼럼 (27)—- 새해 문턱에 서서 ——- 차현회 — 13
  • 미국 교회의 역사 (23) —————— 이정남 — 14- 15
  • 아프가니스탄 선교 방문기 (3) ————-김정복 — 16- 17
  • 김정복 목사의 기도세미나를 듣고 ——— 기도학교–18- 21
  • 2007년도 김정복 목사/순회선교사 사역보고- 기도학교– 22- 23

성탄절에 드리는 시

                              구유에 누이신 예수 그리스도

                                                                                                김정복 목사

주여,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당신께서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의몸을 통하여

다윗의 동네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시던 새벽에,

그 지경(地境)의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使者)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동네에 너희를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主)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襁褓)에 싸여 구유(Manger)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2:8-12)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天軍)이 그 천사(天使)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눅2:13)

지극히 높은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주여,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는 모친마리아가 요셉과 정혼(定婚)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습니다 (마1:18)

마리아가 천사에게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못하니 어찌 이일이 있으리이까 하니,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1:35)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1:21)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것이요

그이름은 임마누엘이라하리라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독생자(獨生子)를 세상에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입니다(요일4:9)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和睦祭)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당신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히4:15, 9:22)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사 우리를구속(救贖)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구약 이사야서에 예언된대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筍)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 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艱苦)를 많이겪었으며, 질고(疾苦)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받은자같아서 멸시를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질고(疾苦)를 지고 우리의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사53:2-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며

그가 징계(懲戒)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입었습니다.

우리는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같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습니다(사53:5-6)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상(上)에서 피흘려 죽으시기 위하여,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신

하나님의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주여,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마귀의 자녀였던 내가(요8:44),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고(요1:12-13),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롬8:15, 갈4:6)

과거에 안목의 정욕과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을 위하여 살던 내가,

이제는 복음을 위하여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으며,

지옥으로 떨어질 내가,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빌3:20)

주여,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이세상에 오신 이 복된소식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에 평화로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오신 예수

(요일4:7-21)

                                                                          김정복 목사 (WMC 기도학교 교수)
  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요일4:7-8)

1) 사랑하는 자들아 사랑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2)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1.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화목제로 보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다 (요일4:9-10)

1)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3) 우리 죄를 위하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和睦祭), an Atoning sacrifice)로 보내셨다.

  1.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요일4:11-12)

1) 하나님은 영(靈)이 심으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요4:24)

2)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3)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다

  1. 하나님이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이제 우리가 성령 안에 거하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안다 (요일4:13-18)

1)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한다.

2)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4)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5)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다

6) 주께서 이 세상을 이김 같이 우리도 세상을 이기게 하려 함이다

7)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8)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나니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한 자이다.

  1.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요일4:19-21)

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이다

2)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 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3)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He has given us this commendment :

Whoever loves God must also love his brother.

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endment I give you :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구약에 나타난 기도 (59)

(나아만의 기도, 열왕기하 5:15-19)

                                                                             김시남 목사 (국제신학대학(원) 교수)

예레미야서 23:30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선지자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이라고 책망 받는 선지자들은 다른 선지자들이 하는 말을 마치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인 것처럼 나타내며 반복하는 선지자들을 나타낸다. 이들이 다른 선지자들의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들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이 영적 소경으로서 잘못된 판단과 잘못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번 호의 글을 읽는 분들로부터 미리 용서를 구하며 구약의 기도에 관하여 글을 쓰는 것을 계기로 위에 언급된 구절과 흡사한 현상에 관하여 먼저 말씀을 드리기를 원한다.

설교를 통하여 또는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는 분들을 통하여 역대기상 4:9-10에 나타나는 야베스의 기도에 관한 말씀을 우리가 듣게 된다. 야베스는 성경에 기록된 인물이며 또 기도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의 기도에 관하여 설교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려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 보기를 권한다. 나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만약 구약에 100개의 기도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야베스의 기도의 중요성은 99번이나 100번째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만약 어느 분이 구약의 거의 모든 기도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였다면 그러한 분은 마지막으로 야베스의 기도에 관하여 설교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아무도 성경의 기도에 관하여 등급을 매길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나의 의도는 예레미야 23:30의 현상이 우리 교계에 없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이번 호에서 나는 열왕기하 5장에 나타나는 아람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기도에 관하여 독자들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실제로 열왕기하 5장에는 나아만의 기도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17절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만 번제를 드리겠다고 말하는 태도는 기도를 포함한 예배를 드린다는 것으로 이해되어 나아만의 기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기독교를 이해하는 기독교인들은 사도바울이라는 인물을 좋아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기독교의 많은 중요한 진리를 성령을 통하여 깊이 있고 생명력 있게 우리를 위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우리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예수 믿기 전의 그의 삶과 예수 믿은 후의 그의 삶이 극적으로 대조되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신약학자가 그의 삶의 변화를 세 표현으로 나타내는 것을 읽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과거와의 단절,” “전체적인 변화,” 그리고 “전적 헌신.”

구약에도 사도바울과 같이 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아람나라의 장군이면서 문둥병자이었던 나아만을 소개하고 싶다. 나아만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포로로 그 집에 잡혀가 있던 이스라엘 여자아이를 언급한다. 왜냐하면 그 여자아이가 나아만을 선지자 엘리사에게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엘리사를 통하여 문둥병이 고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나아만의 변화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열왕기하 5장에 기록된 나아만은 본래 당연히 이해할만하게 거만한 인물이었다. 그가 엘리사를 방문하여 소흘히 대접 받았을 때 나아만은 분노하여 즉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종들의 지혜로운 조언을 받아드려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은 후에 병이 치료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이 치료 후에 나타난 나아만의 변화를 우리는 그의 첫 번 말에서 발견하게 된다: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15절). 나아만의 이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그가 알게 되었다는 것과 이제 그가 그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7절에 보면 그의 감사의 선물을 거절하는 엘리사에게 나아만은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이구절에서 나아만이 두 수레에 실을 만한 이스라엘의 흙을 요청하는 것은고대의 “국가신”의 이해를 보이는 현상으로서 이스라엘의 흙 위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그의 결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가 나아만으로 부터 받는 인상은 그가 말한 것을 번복할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어떻게 그의 일생을 마치었을까? 그가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흙을 자기 집 어느 곳에 붓고 그 위에 제단을 만든 후에 그가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만 경배를 드렸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구약시대에 이방나라 어느 곳에서 한 인물이 이렇게 하나님만을 믿으며 살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감동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나아만이 사도바울과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변화는 과거와 단절되는 변화이었고, 그의 변화는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인 변화이었으며, 하나님을 알게된 후에는 그에게만 전적으로 경배하는 변화이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경배하였다면 그가 또한 그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나는 이번 호에서 우리도 전인적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에게 기도드리는 삶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도바울과 나아만을 함께 살펴보았다. 새해에는 우리의 삶이 변화된 삶이 된 것을 발견하는 복된 해가 되기를 기도드린다.

시편정해 (68)

                                    (시편 56편)

                                                                                        최선호 목사 (메시야교회 담임, 시편정해 저자)

다윗이 사울을 피해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던 블레셋으로 망명한 때(삼상21:10~15)가 그 배경이다. 다윗은 원수의 나라에 살아야하는 운명이다. 그는 고통 중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 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4절)를 고한다.

주제: 고통 중에 하나님을 의지함.

소재: 원수의 나라에서의 고통.

배경: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한 때(삼상27~29장).

수사: 감탄, 호격, 직유, 은유, 설의.

경향: 탄원시(개인적), 구도적.

구성: 3단. 기(1~4절), 서(5~9절), 결(10~13절).

작자: 다윗(믹담 시, 영장으로 요낫 엘렘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불레셋 인에게 잡힌 때에).

핵심어: 생명.

특수어: 믹담(Mictham)- 16편 특수어 해설 참조.

요낫 엘렘 르호김(joath elem rehokim)- 멀리 있는 비둘기란 뜻.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시인을 은유한 표현으로 시 전 체의 성격을 말함. 56편의 제목.

기(起): 고통을 고백하는 기도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절: 자신을 삼키려고 치며 압제함을 열거하여 영적 대적(악인)의 행위를 아뢰고 있다.

2-3절: 1절과 2절의 영적 환경은 동일하나 1절에서는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반면, 3절에서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며 적극적인 믿음성장의 자세를 보인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불레셋으로 갔다. 거기서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다윗은 결국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찾는다.

4절: 4절에는 1, 2, 3절에서보다 한층 더 적극적으로 향상된 믿음의 모습이다. “찬송, 의지, 두려워하지 않음”의 모습은 1절에서 4절까지 점층적(漸層的: climax) 수사를 보여 준다.

“혈육 있는 사람”은 가드의 블레셋 사람으로 다윗을 죽이려는 무리이다(삼상21:10-15).

서(敍): 고통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음

5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내게 대한 저희 모든 사상은 사악이라

6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

7 저희가 죄악을 짓고야 피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

5절: 다윗의 말을 곡해한 악인의 생각은 사악이다(신15:9).

6절: 살해하려는 음모의 실례를 들어 아뢰고 있다.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는 살해하려는 행위의 직유(直喩: simile)의 표현이다.

7절: “저희”와 “뭇백성”은 동의어(同義語: synonym)로써 ‘원수’의 은유(隱喩: metaphor)이다.

8절: “눈물”은 고통 당하고 있는 생명, “병”은 가죽부대, 또는 하나님의 기억, “책”은 두루마리, 또는 생명책에 비유하여 하나님께 인정받았음을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의 설의법(設疑法: interrogation)으로 강조한다.

9절: 내가 기도하는 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원수가 물러가는 응답 받기를 열망하고 있다.

결(結): 하나님을 의지하여 감사제를 드림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0-11절: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이 없으니 사람(원수)이 내게 어찌할 수 없다는 설의법(設疑法:interrogatio)의 강조 문장이다.

12-13절: 주님께 서원으로 감사제를 드려 생명의 빛에 다니게 됨을 확신하려는 열망이다.

새 번역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해설(4)

(Lecture on The Lord’s Prayer and The Apostles’ Creed)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담임)

아래의 새번역 주기도문은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CCK)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두 연합기관이 주기도문 새 번역 특별위원회를 회원 교단 추천인사로 각각 구성하여 2004년 12월 3일 공식 발표한 것이다.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1)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2)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1) 원문(σου)은 ‘당신의’라는 뜻이다.

2) 아버지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주기도문의 해석 (3)

③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나라란 주권 영토 백성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통치, 다스림을 말한다.

ⅰ)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있다. (E.P Sanders, N.T. Wright) 마치 탕자가 세상으로 간 것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를 비유할 수 있다하여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선포로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했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당시 유대인들의 운동과 똑같이 본 것이다.다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사명을 그들이 철저히 행함으로만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수님이 가르치셨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끝까지 민족주의 의식에 잡혀 이방인에게 배타적일 경우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 한다. 결국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민족주의적 혁명을 시도하다가 예수님의 예언대로 성전이 파괴되고 주후70년에 유대민족은 끝났다는 해석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선포를 듣고 따른 이들은 하나님 백성으로 모아져 새로운 해방과 회복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해석에는 문제가 있다.

ⅱ) 토마스 라이트(N.T. Wright)의 연구대로 예수님을 당시 유대교의 맥락에서 보게 될 경우 우리의 전통 신앙고백과는 거리가 있게 된다. 기껏 유대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유대 공동체 회복에 예수님이 초점을 맞추었다면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선포에서 초월성이 제거된 것이다.

마8:11-12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 선포에서 부활이 전제되어 초월성이 보여 진다. 그리고 탕자 비유에서 탕자가 유대가 아니고 실은 아담이다. 그 아담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바벨론으로 간 유다가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께로 회복되느냐를 말한다. 하나님나라 선포는 아담의 타락을 전제한다.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의 회복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통해 해결하려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아담적 숙명의 극복임을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가 복음이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결핍이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하나님의 초월에서 부터 우리에게 은혜로 온다. 하나님의 초월로 부터 우리에게 은혜로 하나님의 구원의 통치가 온다는 것이다.

ⅲ)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이 주실 것을 알았다.(삼하7:11-13,16) 다윗의 집이 세워질 것이 반복해서 약속되었다. 선지자들은 메시야가 오시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땅을 다스리실 것을 내다 보았다.(사24:23, 슥14:9,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그의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 하나님 나라는 가까이 왔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은 사람 중에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중에 있느니라’(눅17:21) 아버지께서 주신 생명 가운데서 성령이 역사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중에 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영적인 나라가(롬14:17)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나라로 온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가 지금 우리에게 임하게 해 달라는 청원기도로 실은 역사의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 통치가 권능으로 완전히 임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ⅳ)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는 ‘나라이 임하옵시고’ 보다 현대어법에 맞는 번역이다. 여기서 ‘오게 하시며’ (ʾελθέτω)는 바로 앞의 구절의 동사 ‘거룩하게 하시며’(ά ϒιασθήτω)와 다음 구절에 있는 동사 ‘이루어지게 하소서’(ϒενηθήτω)가 수동태인데 반해 이것만은 능동태로서 그것을 이루는 주체가 아버지의 나라 자체인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3인칭 능동태 명령형인 ʾελθέτω를 ‘나라가 오소서’(Let thy Kingdom come)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기도문 초두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기도 대상으로 불러놓고 그에 대하여 기원하는 내용이므로 하나님(아버지)을 동 작의 주체로 하여 사동형(使動形)으로 표현하여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가 된다.

기도칼럼 16

                                                         간구기도

                                                                                                        김정복 목사 (성경 기도백과 저자)
  •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6:8)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7-12)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33:3)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왜 사랑하는 자녀에게 간구하라고 하셨을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고 하셨다(마6:8) 그런데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계시며, 또한 모든 것을 응답해 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신데 왜 우리에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고 하셨을까? 구하지 않아도, 찾지 않아도, 두드리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또한 주실 수 있는 분이신데, 왜 사랑하는 자녀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하셨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인격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은 나의 임의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존중히 여겨 상대방의 뜻에 따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즉 상대방의 뜻을 존중히 여기는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며, 존중히 여기시며,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고 싶어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필요한 것과 우리의 소원을 다 아시고 계시지만 우리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부르짖을 때에 우리의 간구한 내용을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나 새와 같은 동물에게는 물과 먹이가 없으면 주인은 동물에게 묻지 않고 물과 먹이를 준다. 그러나 사람이 식당에 가면 반드시 종업원이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하고 주문을 받아서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공급한다. 이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접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라 하더라도 음식을 얻어먹는 거지에게는 주문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동물이나 음식을 얻어먹는 거지같이 취급하지 않으시고 인격적 사랑으로 예우해 주시기 때문에 너는 내게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목양칼럼 27

                                       새해 문턱에 서서

                                                                                                  차현회 목사 (세계웨슬리선교회 회장)

금년도 마지막 달력을 쳐다보는 우리들의 심상은 자못 백상백사(百想百思)인 것이 틀림없다. 또한 어떻게 살았고, 일했는지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누구나가 한 두 번쯤은 반성과 후회로 흥분하는 마지막 달인 것이다. 제야(除夜)의 종이 울리기 전 참회라는 법정에 서서 재판장이신 주님께 그간의 모든 실패와 불충 그리고 망언과 탈선한 행위들을 낱낱이 고백하지 않고 은혜와 평강의 축복을 받을 수 없기에 가차 없이 숨김없는 참회가 이어져야 하리라 믿는다. 참회는 새해의 축복을 담을 거룩한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은 은총은 받으면 받을수록 영과 육이 강건해 지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구주성탄은 진정으로 경축하려는 우리 모두에게 화해의 크리스마스, 치유의 크리스마스 나눔의 크리스마스, 찾아가는 크리스마스, 만남의 크리스마스, 하나됨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찬양과 화평의 크리스마스 등 자성자백(自省自白)의 참회로 새해를 맞이하는 심령들 위에는 임마누엘의 축복으로 충만할 것을 확신하면서 알파와 오메가이신 우리주님께 일체로 맡겨드리고 새해 첫 출발의 노를 저을 뿐이다.

미국교회의 역사 (23)

                                                                                                               이정남 목사(본지 편집위원)

미국의 모습

미국이 독립국가로서 가진 첫 번째 공식적인 인구조사는 1790년. 인구는 3,929,625 명, 그중 흑인 인구는 697,62 명의 자유인과 59.557 명의 노예이다. Virginia 주가 747,610명으로 가장 큰 주이다. Philadelphia는 42,444 명으로 가장 큰 도시이다. Massachusetts 주는 노예가 없다. 1790년에는 연방 이민법을 제정하여 미국에서 2년 거주한 후에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1798년에는 새로운 이민법-Alien and Sedition Acts-을 제정, 미국에 14년 거주하고 귀화의사를 밝힌 후 5년이 지난 다음에 시민권을 부여하였다. 미국에 도착한 후 14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허락하고 그리고 5년 후 시민권을 준 셈이다. 1797년 3월 4일 John Adams는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John Adams는 독실한 회중교회 교인으로 그의 부인 Abigail과 함께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신앙심이 깊은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는 회중교회의 진보파로서 이 진보파는 1800년대 초에 회중교회로부터 분리하여 Unitarian 교회가 된다. 많은 기록에 따르면 Adams 대통령은 회중교회 교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일부는 Unitarian 교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1792년에 Russia는 자신의 영토인 Alaska에 러시아 정통교회 선교사를 파견, 정통교회를 세웠다. 물론 미국이 Alaska를 구입하기 전이다.

독립전쟁과 새로운 도전을 받는 교회

1700년대를 마감하고 독립국가의 교회로서 1800년대를 맞이하는 미국 교회의 미래는 결코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0여 년에 걸친 전쟁으로 많은 교인들은 흩어졌고 많은 교회 건물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계몽주의와 범신주의 사상이 팽배하였고 자연주의 종교에 심취한 독립운동의 리더들과 새로운 국가의 리더들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앙은 낡은 종교같이 보였다. 1800년을 앞에 두고 교회의 등록된 교인은 전 인구의 10% 정도로 추정하기도 한다. 교인들의 교육, 재산 등이 교회 등록에 조건이 되기도 하였던 시기이다. 물론 후에는 인종적인 문제가 추가되기도 하였다. 1976년만 해도 당시 Carter 대통령 후보가 참석하던 Georgia 주의 Plains 침례교회 평신도 총회는 한 흑인목사가 교인 등록을 신청하였을 때 거절하였다. Carter 후보와 동감하는 일부교인들은 그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였었다. 1950년 LA 제일 침례교회 (8가와 Westmoreland Ave.) 평신도 총회는 한 흑인 여성 (박사학위 소유자였다)의 등록을 요청하였을 때 거절하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담임목사는 자신이 지난 20년 동안 이 강단에서 선포한 멧세지가 교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다고 선언하고 사임하였다. 이와 같이 지금도 교인 등록 신청을 하면 평신도 총회에서 (형식적이지만) 승인한다.

최초의 흑인 교회와 흑인교단

1794년 Richard Allen 목사 인도로 미국 최초 흑인교회가 세워졌으며 1816년에는 16개의 흑인교회가 연합, 최초의 흑인교단인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 (AME 교단)이 설립되었다. 이런 교회의 정책이 결국은 흑인들이 독립교단을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당시 등록 교인이란 오늘날의 등록 교인과는 달리 상당히 엄격한 신앙고백과 재정적인 면, 교육수준 등등이 등록 심사의 기준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주민의 50% 이상이 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교인들로 추정하고 있다.

내부로부터 오는 도전

이런 현실 앞에 개신교회 리더들은 새로운 1800년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이 가져온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년에 걸쳐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세우려는 노력을 시작한다. 전쟁 후 교회는 협력하는 선교전략이 요구되는 시기였지만 오히려 분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단들은 하나로 뭉치기보다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화 (분열) 하였다. 21세기 미국 교회의 현실로 보면 Good Old Day이지만 독립 전의 교회 형편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였다.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여하였으나 신앙의 자유의 범위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대부분 주들은 투표권을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개신교에게만 인정하였다. Massachusetts, New Hampshire, Connecticut주에서는 회중교회는 정부가 인정하는 교회 (주정부의 지원, 보호를 받았다)로서 계속 되었으나 타 교파에 대한 차별은 하지 않았다. Virginia 주의 경우 침례교회와 장로교의 끈질긴 압력이 있는 후 1784년이 되어서야 영국교회 교인이 아닌 교인들에게 부과하였던 벌금을 폐지하였다.

1700년대를 보내고 1800년대를 맞이하는 미국의 교단 현실을 한번 보자. 큰 교단으로 회중교회, 침례교회, 장로교회, 루터교회 그리고 감리교회였다. 그 중 루터교회는 대부분 독일 이민 교회로서 독일어를 지키는 고립적인 교회였다. 독일어를 예배 언어로 고집한 결과 독일어는 지켰으나 미국인이 되는 데에는 3-4세대를 잃었다고 보고 있다. 감독교회는 영국교회로서 신대륙에서 감독교회 (Episcopalian) 라고 이름만 바꾸었을 뿐 영국교회였다. 이제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 위에 영국교회로서 가지던 특권을 상실하였다. 리더들은 감독교회가 신대륙 미국에서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고민까지 하게되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는 소규모 교단들-독일 개혁교회, Quaker, 홀랜드 개혁교회, 모라비안 교회, 메노나이트 (Menonnite) 그리고 카톨릭교회-이었다. 그리고 극소수의 유대교인, 이들은 주로 스펜인과 포츄갈 출신 유대인들로서 남미로 이주하였다가 신대륙으로 다시 이주한 유대인들 (Sephardic Jew) 이었다. 그리고 1700년대를 보내면서 새로운 교단들은 빠른 속도로 탄생한다. 대부분은 새로운 이민 집단이 가지고 오는 교단들, 교단이 분열함으로 탄생하는 교단들, 그리고 신대륙 특성에 맞게 새롭게 탄생하는 교단들로서 교단의 분열은 놀라울 정도였다.

아프가니스탄 선교방문기 (3)

                                                                                                                                김정복 목사

마제리샤리프(Mazar-e sharif) 에서 2시간 정도 서쪽으로 가면 셰벌간(Sheberghan)이라는 교육도시가 나온다 이곳에도 평신도 한인 여성선교사가 두 사람 살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선교사집에 찾아가 그곳의 활동사역을 들었다 두 명의 20대 미쓰 사역자들은 그곳에 있는 교육청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그 지 역의 초등학교에 월$200 정도의 점심(빵)을 공급한다 그리고 학비가 없는 극빈자 10명을 뽑아서월10씩 총 $100을 보조하는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 사역자들은 교육청과 담당 학교와 수혜자 가정을 찾아 가서방문형식으로 극빈자와 사랑을 나누며 조용히 예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복음의 씨는 아프가니스탄 이곳 저곳에 조용히 뿌려지고 있음을 알수있었다. 나는 이곳 사역자들의 선교 사역을 벙어리 선교사역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들에게 결코 입으로 말로 예수를 전해서는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은 국민의 99%가 모슬렘이므로 이들에게는 다만 말없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사역자의 삶으로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한다. 오늘도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복음을안고 전쟁과 가난과 모슬렘교리에 찌들린 사랑에 굶주린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을 위해서 새벽부터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한 후에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나이를 물어 보았다. 한 사람은 75년생이고, 한사람은 73년생이었다. 얼굴도 복스럽게 잘 생긴 아름다운 미쓰들이었다. 나의 자녀들 보다 훨씬 어린 미쓰들이 세상적인 모든즐거움과 꿈을 다 버리고 이곳 아프가니스탄의 시골 셰발간에 들어와서 오직 주예수그리스도를사랑하기 때문에, 이곳국민을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열악한 환경과 주택, 그리고 불안한 치안과 신분보장도 없는 이곳에서 오직 믿음으로 주님만 의지하고사는 여성 사역자들을 생각할 때에 감격하지 않을수없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이들 젊은 두 여성사역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생각해 보니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셰발간에서 다시 마제리샤리프로 돌아오는 길에 한 오래된 성터를 지나가게 되었다. 잠시 그 성터를 보고 가자고 한다. 우리 일행은 그 오래된 성터로 들어갔다. 왜 그런지 분위기가 음산하고 죽음의 영이 뒤덮고 있는 것 같이 기분이 나쁘다 흙으로 쌓여진 성터 앞에서 차를 세우고 모두 내려오라고 한다 우리 일행이 내려가서 보니 성터 흙더미 속에 사람의 뼈들이 이곳 저곳에 섞여 있었다 선교사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과거에 이 성을 쌓을 때에 모슬렘교도들이 이슬람교를믿지않는 이방인들을 잡아다가 죽여서 그 시신으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성은 온통 흙더미 속에 사람의 해골과 뼈들이 섞여 있다고 한다 이곳은 참으로 죽음의 영(靈)이 덮여있는 음산한 곳임을 기분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어둑어둑 해가 저물어 간다. 저녁이 되니 어느새 길거리에 소련제 기관 총을 든 지역 민병대들이 눈에 보인다 조금 두려운 마음으로 그곳을 지나는데 우리 차를 운전하던 모슬렘교도인 운전기사가 갑자기 민병대 초소 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왜 초소 안으로 들어가느냐고 하니 까 이 지역 민병대 대장이 바로 자기의 친형이라고 하며, 미국에서 온 우리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막사 안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 지역을 떠날 수 있었다. 나는 순간순간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지 않고는 이곳에서 생활 할 수 없음을 다시 느끼며 차안에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어느덧 다시 마제리 샤리프에 돌아왔다 오늘은 추석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맞는 추석 보름달은 미국에서 보던달과 조금도 다 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사람들에게 똑 같은 해와 달을 주셨건만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는 사 람들과 미국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달랐다 물론 사람도 달랐고 언어도 달랐고 문화도 달랐다 그러나 더욱 다른 것은 신앙이 달랐다. 이들은 알라신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고,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일체의 유일신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코란을 경전으로 믿고 있고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누구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사느냐에 따라서 이와 같이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김정복 목사님의 기도세미나를 듣고 (1) (2007.9.11-14)

                                                                동부개혁 장로회 신학교 캐나다 분교 목회학 석사과정 박영준

먼저 그리스도 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말씀과 기도를 한 body로 묶어 주시고, 반평생을 기도를 위하여 사신 김정복 목사님을 뵙게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우리들을 위하여 헌신하시고 기도를 체계적으로 학문적으로 세워가시는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계에서 말씀과 기도가 들어가지 않은 곳은 없으나 포괄적인 의미에서만 접근하는 것에 불과 했다는 것을 이 강의를 통해서 느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삶이라면, 늘 기도에 부담감을 안고 삽니다. 부담감이라는 표현은, 교회에서 가르치기는 기도해야 할 것에 대한 주문은 있으나,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말씀이 정립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가르침의 주요 핵심의 내용은 교회의 외적 부흥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기존 교회의 말씀에 머리부분은 기도와 말씀이지만, 결론은 교회부흥과 생사화복에서 머물러버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요즘 현대인의 신앙생활은 매우 복잡합니다. 바쁜 삶속에서 그야말로 기도는 부담으로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저는 평상시 기도를 교회와 우리의 삶속에서 접목 시키는 것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고 현대 교인들이 기도 하지못하고 보내는 그들의 끝없는 갈증들을 느껴왔습니다.

김정복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목사님의 반평생 기도에 헌신하신 모습과 열정적인 강의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학문이 아닌, 헌신된 기도의 삶입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첫째는 기도의 필요성과 기도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말씀을 통하여 한 가지 한 가지 집어져 갈 때 기도가 힘있게 아버지께 올라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곧 김정복 목사님의 강의는 기도학이었지만, 기도세미나였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과 기도가 One body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목사님의 강의는 말씀을 통하여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역사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씀 속에서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지는 것 말입니다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역사들이 성경을 통하여 바르게 가르치고 있음을 통하여, 바른 기도의 맥을 집어주셨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바램입니다만 W.M.C. 기도학교에서 일반 성도들에게 바른 성경적 기도를 교육하고 있는 것처럼, 각 교회에도 이런 전문적인 기도학교가 있고 항상 성경적 기도를 배우고, 실천 할 수 있는 양성기관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목사님께서 앞장서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좀 아쉬움이 있다면, 시간이 너무 짧아서 실습시간을 같지 못해서 입니다. 각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워 교회에서 이러한 사역들이 원할하게 이루어지도록 매년마다 오셔서 이론과 실제가 교회에 잘 접목되도록 질의 응답시간도 갖고 이론과 실제가 있는 사역의 장들이 목사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면서 저희들에게도 다음에는 실제적인 기도 실천 시간들을 목사님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나의 사역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

전자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교회사역에서 기도 사역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기도학교에서 사역을 한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개척교회인지라 아직은 시도를 못하고 있으나,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시행하려고 합니다.먼저 교안을 만들어 가는데 목사님의 교안들은 너무나 잘 되어 있고 저희들이 뽑아 쓰기에 아주 적절하게 잘 되어 있어, 교회 형편에 따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목사님의 성경적 기도와 Q.T. 쎄미나 강의 내용에서 첫째날 강의 후에 개인기도와 짝기도, 둘째날 강의후에 그룹 돌림기도, 셋째 날 강의 후에 사랑의 집중기도, 넷째날 합심기도와 대표 돌림기도등을 접목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소개 해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속에서 기도의 의문이나 날마다의 기도생활 속에서도 오는 무력감을 성경적 근거로 바르게 가르칠 수 있고 저 역시 힘이 됩니다. 기도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은사기도 인데, 이것은 기도자들에게 반드시 따라오는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것 역시 성경적 근거로 바로 알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더욱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해 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란 믿음, 소망, 사랑, 성령충만, 전도등 여러가지 은사중의 하나가 아니고 모든 은사보다 앞에 있는 ”하나님과 나”사이에 놓여진 “생명의 통로이며, “은사의 통로”인 것이다.. 이 생명의 통로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여러가지 은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저들에게 바른 성경적 기도생활이 없기 때문이다. “오 주여, 나에게 바른 기도를 주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옵소서.”

김정복 목사님의 기도세미나를 듣고 (2) (2007.11.5-17.)

                                                                                                      인도 벵갈로 한인교회 이수진 집사

지난 2주 동안 김정복 목사님께서 진행하셨던 ‘성경적 기도와 Q.T. 세미나’ 는 매일 내 죄를 주님께 회개하는 시간이였다. 자주 들었고, 그래서 너무나 친숙한 말씀인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 이 말씀이 정말로 내 삶에 찾아와 나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로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였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파고들어 결국 주님께 두 손을 들게 했고,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아집, 습관들이 하나 둘씩 깨지고 부서지는 시간이였다. (물론 지금도 부서지고 깨져야 할 내 생각과 아집들은 많다.)

사실 2주 동안 진행된 이 세미나가 나에겐 참 부담스러웠다. 회사 일을 끝내고 매일 교회로 가는 그 길은 사단과 매일 씨름하는 시간이였다. 피곤함이 나를 덮을 때, 갑자기 주어진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교회로 향할 때, 내가 계획했던 일들을 그 시간으로 인하여 진행하지 못했을 때, 그 때 사단은 나를 더 괴롭혔다. 하지만 교회에 도착하고 말씀을 듣고 배울 때 그 피곤함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내 마음에 평안함과 기쁨이 가득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말씀 이외의 것들을 말씀보다 더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김정복 목사님께서 강의해주신 성경적 기도를 들으면서 내 기도가 얼마나 성경적이지 않았는지 알았다. 기독교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하는 것인데 나는 내 맘대로 기도했었다.

나는 기도를 단순히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들을, 내 소원들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도하기 전 나는 그 기도의 응답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하나님 이렇게 안해주시면 안돼요. 꼭 이렇게 해주세요. 주님 저 사랑하시죠? 그럼 이렇게 해주세요.” 협박 아닌 협박으로 주님께 기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타종교의 기도와 혹은 주문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김정복 목사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면 안된다고 하시며 들려주셨던 예시들이 어쩌면 내가 그 동안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27년 동안 주님께 열심히(?) 기도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은 기도였다니.. 어찌 이리 허망한지.. 그리고 어찌 이리 감사한지.. 이렇게 무지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지금부터 120세까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해주시니 감사할 뿐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2-14)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내가 받은 은혜는 한 없이 많지만,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다. 이번에 받은 은혜를 가지고 나는 또 다시 푯대를 향하여 한 걸음씩 계속 전진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에 비로소 온전히 이루었다고 고백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계속 깨어있어야겠다.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기도 안에서 매일 나를 되돌아보며 어제 받은 은혜로 살아가기 보다는 오늘 주실 은혜를 더더욱 간구하며 나아가야 겠다. 온전히 그분의 말씀이 나의 삶을 끝까지 주장하실 수 있도록 말이다.

주님께서 내게 선한 도전을 허락하셨다.

  1. 매일 나의 삶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다

— 하루에 3시간씩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온전한 하루의 십일조를 드리도록 한다

  1. 2007년 12월31일까지 남편과 함께 성경일독을 한다

—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부부가 성경 3독을 한다

  1. 매일 아침 Q.T. 로 하루를 시작한다

— Q.T .노트를 만들고 그날의Q.T.로 남편과 꼭 나눔을 갖도록 한다

  1. “기도의자”를 마련한다

— 적어도 기도시간의 30분은 도고의 시간을 갖는다

  1. 감사일지를 만든다

— 매일 저녁 나에게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일지에 기도하도록 한다

어쩌면 위에서 결단한 것들이 내 능력 밖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그 마음을 허락하신 그 분만을 바라보며 하나 둘씩 내 삶에서 실천해야 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하고 주님께서 온전히 이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실 줄 믿고나아갈 것이다.

2007년, 이 먼 인도땅에 살고 있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허락하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이 글을 마친다.

  • 2007년도 김정복 목사/ 순회선교사 사역보고 –

1) 1-2월, 남미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기도학교/기도세미나 인도

(1) 파라과이 기도학교/기도세미나 : (1/4/2007-1/21/2007)

  1. 할렐루야 교회(정금태 선교사) : 현지인연합집회 인도
  2. 재파 한인선교사 협의회 기도학교/기도세미나 인도
  3. 아순시온 한인 기도학교 인도 (사랑의 교회, 김인서목사)
  4. 현지인교회 기도세미나 인도 (임성익목사) 5. 엔카 한인교회 기도학교/기도세미나 인도(성우경목사)

(2) 아르헨티나 기도학교/기도 세미나 (1/24/2007-2/2/2007)

1, Eldorado시 과라니 현지인 신학생 및 목회자 기도세미나 인도

  1. Shepherd 신학교 신학생 기도세미나 인도 (이삼선 선교사)

3, 한인교회(최주호목사) 주일예배 인도

4, 한인교회 목회자 및 선교사 기도세미나 인도

  1. Buenos Aires 현지인교회 기도세미나 인도

2) 2-3월, 극동 유즈노 사할린, 연해주, 하바롶스크 기도학교 개강

(1) 유즈노 사할린 (2/27-3/7/2007)

  1. 유즈노 사할린 교회(정 운 목사) 기도학교 인도
  2. 빛과 사랑의 교회 (최신출 목사) 집회 인도
  3. 뽀로나이스크 교회 (조순덕 전도사) 기도세미나 인도
  4. 돌린스크교회, 븨꼽교회 (조영혜전도사) 집회 인도

(2) 연해주 한인 선교사 기도학교 개강 (3/8-12/2007)

  1. 블라디보스톡 국제학교 아침기도회 및 주일예배 인도
  2. 연해주 한인 선교사 기도학교 개강 (양영근 선교사)
  3. 블라디브스톡 현지인 교회 주일 예배 인도 (최진선 선교사)

(3) 하바로프스크 한인 선교사 기도학교 개강 (3/13-15/2007)

  1. 하바로프스크 한인 선교사 기도학교 개강

3) 4-5월, 몽골, 중국 기도세미나 인도

(1) 몽골 울란바타르 기도세미나 (4/30-5/8/2007)

  1. 몽골 연합 신학대학에서 기도학 강의 (이대학 선교사)
  2. 몽골, 울란바타르 행복한 교회 주일 설교 인도
  3. Mongolian Methodist Bible College 기도학 강의 (김정호 선교사)

(2) 중국. 모처 (5/9-12/2007)

  1. 교회지도자 기도세미나 인도

4) 6월, 한국 서울교회 (이종윤목사)

  1. 2007년 홍해작전 (새벽기도회) : 06/06-10/2007 AM 5:00-6:00 (5일간 인도)

5) 7-8월, 카나다 토론토 가든교회(정관일목사) 전교인 수련회 인도 (7/31-8/6/2007)

  1. 토론토 가든교회 전교인 수련회
  2. 주일 예배및 새벽기도회 인도

6) 8월, 터키 이스탄불 (8/12-20/2007)

  1. 중앙아세아 감리교 선교사대회 기도세미나 인도
  2. 우즈벸스탄, 카작스탄, 키르키스탄, 아젤바이젠, 우루무치, 터키, 선교사

7) 9월, 카나다 토론토 (9/10-14/2007) 기도사경회 인도

  1.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 카나다 노회 기도세미나 인도 (9/10-11/2007)
  2. 동부개혁 장로회 신학교 캐나다 분교 기도학 특강 (9/12-14/2007)

8) 김정복 목사의 신간 “성경 기도백과” 출판기념 감사예배

  1. Los Angeles, 월드미션대학 에서(9/30/2007)
  2. 서울, 종교감리교회에서 (11/1/2007)

9) 한국 대전제일교회(김철민 목사) 기도 사경회 인도

  1. 10/30-31 (새벽기도회, 저녁예배)

10) 11월, 인도 벵갈로(정윤진 목사), 기도학교/기도세미나, 성경세미나 인도 (11/5-20/2007)

  1. Asia Evangelical College & Seminary 기도학 및 성경연구 특강
  2. St. Paul School 현지인 교사 기도세미나 특강
  3. Bangalore 한인교회 기도세미나및 성경세미나 인도

11) 12월 미국 필라델피아 및 벌티모아(워싱톤) 교회에서 기도 사경회 인도

  1.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 (김재성목사) 기도사경회 (12/5-8/2007)
  2. 새소망교회 (최태은목사) 주일예배, 수요예배 인도
  3. 메릴렌드 워싱톤 DC 성령의 불꽃교회 (유재유목사) 기도사경회 (12/13-16/2007)

12) 매월 월간기도 편집, 발행 및 발송 사역

1) 매월 5000부 발행

2) 미국내 : 1500부 개인에게 발송/ 60개 교회에 발송/ 서점에 배포

3) 해외 : 한국의 개인및 교회에 발송/ 40여개국 선교사에게 발송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눅1:35)

천시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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